제사는 원시적인 미개사회서부터 시작되어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가 형성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지면 어떤 형태로든 제사문화가 발달되었다. 미개사회나 문명사회는 형태만 다를 뿐이지 제사는 지속되었고 지금도 각기 다른 주술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사문화에 대한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기록은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이 시기에는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로서 자연숭배의 제사의식을 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에 들어와서야 자신의 조상을 제사지내는 의례로 발전하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왕가에서 먼저 행해졌다. 삼국시대의 제사의례는 중국 문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과의 문화적 접촉으로 우리 고유만의 제사 의례가 정착되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제사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시기는 조선시대로 고려말에 이르러 성리학의 도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지며 조상에 대한 제사가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되어 갔다. 조선시대 예법의 표준은 왕실의 경우 '국조오례의'였고, 민간의 경우에는 '가례'가 일반적인 예법서였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제사문화는 조선 말기까지 유교문화속에서 사회전반에 걸쳐서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왔다.        

 


 

기 제
 

기제는 기일제사의 약칭으로 기일 즉,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 해마다 한번씩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기제는 오늘날의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로 인식되고 있다. 기제의 봉사대상은 과거에는 [주자가례]에 따라 4대조까지였으나 요즘에는 2대조까지와 후손이 없는 3촌 이내의 존,비속에 한해서만 기제를 지낸다. 제사시간은 고인이 돌아가신 날 자정부터 새벽 1시 사이 모두가 잠든 조용한 시간에 지냈었으나 요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날 해가 진 뒤 어두워지면 아무때나 적당한 시간에 지낸다. 제사는 제주의 집에서 지내는데, 고인의 장자나 장손이 제주로서 제사를 주재한다. 장자나 장손이 없을 때는 차자나 차손이 주관한다제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고인의 직계자손으로 하며 가까운 친척도 참석할 수 있다.

   


시 제

 

시제는 원래 사시제라고 부르던 것으로서 1년에 네 번 즉, 춘하추동의 계절마다 고조 이하의 조상을 함께 제사하던 합동제사의 하나이다. 시제는 고전예법에서 정제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 제사였다. 고대에는 제사는 곧 시제를 말하는 것으로 제사의 으뜸이었으나 조선시대 이후 기제가 중시되면서 점차 퇴색되어 갔다. 또한 일년에 행하는 제사의 횟수가 많아지면서 현재는 보통 1년에 한번만 행하고 있다. 시제는 조상을 모신 사당에서 거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당이 협소할 경우에는 정침의 대청에서도 행해졌다.

 


차 례
 

차례는 간소한 약식제사로서 음력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 그리고 명절이나 조상의 생신 날에 지내며 보통 아침이나 낮에 지낸다. [가례]를 비롯한 예서에는 차례라는 것은 없으나 우리 나라에서 관습적으로 민속명절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이다. 차례는 기제를 지내는 조상에게 지낸다. 예를 들어 고조부모까지 4대를 봉사하는 가정에서는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그리고 돌아 가신 부모 등 여덟 분의 조상이 대상이 됩니다. 차례는 명절날 아침에 각 가정에서 조상의 신주나 지방 또는 사진을 모시고 지낸다. 차례도 물론 기제를 지내는 장손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방이나 가문의 전통에 따라 한식이나 추석에는 산소에서 지내기도 한다

   


묘 제
 

묘제는 산소를 찾아가서 드리는 제사이다. 제찬은 기제와 마찬가지로 준비하고 토지 신에게도 따로 제수를 마련하여 제사를 지낸다. 고례에 의하면 제주를 비롯한 여러 참사자들이 검은 갓과 흰옷을 갖추고, 일찍 산소에 찾아가 제배하고, 산소를 둘러보면서 세 번 이상 잘 살피며 풀이 있으면 벌초하고 산소 앞을 깨끗하게 쓸고 난 후 산소의 왼쪽에 자리를 마련한다. 토지신에게 먼저 제사를 지낸 뒤, 산소 앞에 정한 자리를 깔고, 제찬을 진설한다. 묘제는 그 장소가 산소이므로 그 진행 차례도 집안에서 지내는 제사와 다르며 과거에는 산신에 대한 제사가 따로 있었다.

 

 

한 식 
 

한식은 청명 다음날로 동짓날로부터 계산해서 1-5일째 되는 날이다. 이 날은 예로부터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관습이었다. 한식이란 말은 옛날 중국에서 비바람이 심해서 불을 떼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는 풍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 제수 진설도

 

<제수 진설의 원칙>
제수의 진설은 각 지방의 관습이나 풍속, 그리고 가문의 전통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가가례(家家禮)라고도 하며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참견 말라'는 풍자적인 말까지 나오게 된다.  제주(祭主)가 제상(祭床)을 바라보아 오른쪽을 동, 왼쪽을 서라한다. 진설의 순서는 신위로 부터 제1열에 메와 갱, 제2열에 적과 전, 제3열에 탕, 제4열에 포와 나물, 제5열에 과일을 차례대로 놓는다. 

<제수진설(祭羞陳設)에 쓰이는 용어들>
좌포우혜(左脯右醯) : 포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는다.
어동육서(漁東肉西) : 어류는 동편에 육류는 오른편에 놓는다.
두동미서(頭東尾西) :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홍동백서(紅東白西) : 과실이나 조과의 붉은색은 동쪽에 흰색은 서쪽에 놓는다.
조율이시(棗栗梨枾) : 서편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순으로 놓는다.
생동숙서(生東熟西) : 동쪽에는 김치를 놓고 서쪽에는 익힌 나물등을 놓는다.
좌반우갱(左飯宇羹) : 메는 왼편 국은 오른편에 놓는다.

덕양군종중 진설도

※ 주자가례 제찬도

 

 

 

 

 

 

 

 

 


 

 

 

1. 지방 작성법 

  지방에는 원래 정해진 규격이 없지만 신주를 약식화한 것이므로 신주의 체제에 유사하게 제작하는 것이 좋다. 문안을 쓸때에는 붓을 사용하여 한자로 쓰는 것이 좋으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적당한 필기구를 이용하여 한글로 작성하여도 무방하다. 지방의 규격은 가로 6 cm, 세로 22 cm의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쓴다. 상단을 둥글게 하고 아래쪽을 평평하게 하는데 이는 천원지방(둥근 하늘과 평평한 땅)을 상징한 것이다. 문은은 일반적으로 남자고인의 경우 '顯()考學生府君神位', 벼슬이 있으면 "學生"(학생)대신에 벼슬의 관직(예를 들면 "崇祿大夫"등)을 쓰고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을 쓴다. "孺人" 다음에는 본관성씨를 쓴다. "考"(고)는 사후의 "父"(부;아버지)를 뜻하며 "비"는 사후의 母(모;어머니)를 뜻한다. 아내의 제사는 자식이 있더라도 남편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자식의 제사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는것이 기본이다. 지방을 붙일 때 왼쪽이 높은 자리, 오른쪽이 낮은 자리이다. 한 할아버지에 두 할머니의 제사일 경우 가장 왼쪽이 할아버지, 중간이 본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인다.

 

                          



  • 지방을 쓰기 전에 몸을 청결하게 하여 조상에 대한 예의를 갖춥니다.
  • 남자 고인의 경우, 벼슬이 있으면 學生(학생)대신에 벼슬의 관직(예를 들면 崇祿大夫등)을 쓰고
  •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을 씁니다.
  • 여자의 지방 孺人 다음에는 본관성씨를 씁니다.
  • 考(고)는 사후의 父(부;아버지)를 뜻하며 비는 사후의 母(모;어머니)를 뜻합니다.
  • 아내의 제사는 자식이 있더라도 남편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자식의 제사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는것이 기본입니다.
  • 지방을 붙일 때 왼쪽이 높은 자리, 오른쪽이 낮은 자리입니다.
  • 한 할아버지에 두 할머니의 제사일 경우 가장 왼쪽이 할아버지, 중간이 본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입니다.



여러 경우의 지방 쓰기 사례

초록색 부분은 알맞게 수정하여 쓰도록 합니다. 지방은 백지에 붓으로 정성스레 써야합니다. 그러나 사정상 여의치 않은 분들은 아래한글3.0으로 작성된 문서를 다운받아 편집하여 쓸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시스템에 궁서체 한자폰트가 설치되어 있어야 아래의 글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탕체로 보여 격식에 맞지 않을뿐 아니라 확장한자폰트가 없는 경우 죽은어미비字는 보이지 않습니다.

                         


 

 

 

 2. 축문 작성법

축문이란 제사를 받드는 자손이 제사를 받는 조상에게 제사의 연유와 정성스러운 감회,그리고 간략하나마 마련한 제수를 권하는 글이다. 특히 기제사에서 지방을 붙이면 축문을 읽는것이 원칙이다. 살아계신 어른에게 색다른 음식을 올릴 때 의당 권하는 말씀을 올리는 것처럼 조상에게도 제수를 올리면서 그 연유를 고하는 축문을 작성한다.
축문의 내용은 그 제사를 지내게 된 연유를 '언제'-'누가'-'누구에게'-'무슨일로'-'무엇을'의 형식으로 고하고 제사를 받으시라는 줄거리로 이루어진다. 축문은 신명앞에 고하는 글이며 그 내용은 제위분께 간소하나마 제수를 차렸으니 흠향하시라는 뜻을 담는다. 축문도 지방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한 한문으로 쓰는 것이 좋다. 축문의 규격은 가로 24cm, 세로 36cm 의 깨끗한 백지에 쓰며, 벼슬이 있을 때의 호칭은 지방을 쓸 때와 같다. "學生" 대신에 "관직명"으로,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등을 쓴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에는 축문을 쓰지 않는다.

 부모 기제사의 경우

 

<풀이> 0년 0월 0일 효자 000는 삼가 고하나이다. 아버님과 어머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아버님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하늘과 같이 크고 넓으신 은혜를 잊지 못하와
삼가 맑은 술과 여러가지 음식을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남편기제사의 경우

 

<풀이> 0년 0월 0일 주부 000는 삼가 고하나이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당신께서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슬픈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가지 음식을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기제사 축문의 예(양친별세 부친제사)
(초록색 부분은 고쳐쓰도록 합니다)



축문 해설

維(유); 이어서 내려오다.
歲次(세차); 해의 차례.
干支(간지); 간지는 천간지지 육십갑자의 그해의 태세를 쓴 것이며
그 예로 금년이 丁丑 (정축)년이면 丁丑 (정축)이라고 씁니다.
某月(모월); 제사날을 따라 쓰며 제사달이 정월이면 正月 8월이면
八月(팔월)이라 씁니다.
干支朔(간지삭); 제사달의 초하루라는 뜻으로 제사달 초하루의
(십오일)로 씁니다.
干支(간지); 그 제사날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15일이 제사날이고
15일의 일진이 甲子(갑자)이면 甲子(갑자)라고 씁니다.
孝子이름은 겸양의 표현으로 본문보다 조금 작게 씁니다.
敢昭告于(감소고우); 삼가 밝게 고한다는 뜻으로 妻喪 (처상)에는 敢(감)
자를 버리고 昭告于(소고우)만 쓰며 아우이하는 다만 告于(고우)만 씁니다.
예제 축문은 양친이 별세한 경우 부친 제사의 축문이며 모친제사의
경우에는 청색 글의 顯考 (현고)를 顯비 (현비,비:죽은어미비字)로 고쳐 씁니다.
부모 중 한쪽이 살아 계신 때에는 顯考學生府君 (현고학생부군) 혹은
顯비孺人ooo氏 (현비유인ooo씨)중 한쪽을 쓰지 않습니다.
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 (현고)를 顯祖考 (현조고), 顯비 (현비)를
顯祖비 (현조비)로 고쳐씁니다.
증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 (현고)를 顯曾祖考 (현증조고), 顯비
(현비)를 顯曾祖비 (현증조비)로 고쳐 씁니다.
고조부모 제사의 경우 顯考 (현고)를 顯高祖考 (현고조고), 顯비
(현비)를 顯高祖비 (현고조비)로 고쳐 씁니다.




한글 축문의 예 (양친별세 부친제사)
(위 한문 축문과 같은 뜻입니다)


일 효자 아무개는 감히 고하나이다.
아버님 어머님,
해가 바뀌어서 아버님의 돌아가신 날이 다시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과 하늘같이 크고 넓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전을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제삿날이 다가오면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제가에 참여할 친족들에게 두루 연락을 한다. 기제사의 참석범위는 그 조상의 직계 후손들을 원칙으로 하지만 형제나 가까운 친지들도 참석할 수 있다. 제사의 주재자는 제사 하루 전 입제일에 제소(祭所:제상 앞)주변을 청소하고 제구와 제기를 내어 깨끗이 닦고 제주와 제수를 준비한다. 제사집전에 쓰일 용구를 준비하고 지방,축문도 미리 작성하여 둔다.





영신(迎神)
먼저 대문을 열어 놓는다.
제상의 뒤쪽(북쪽)에 병풍을 치고 제상 위에 제수를 진설한다.
지방을 써 붙이고 제사의 준비를 마친다. 고례(古禮)에는 출주라 하여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 내오는 의식이 있었다
.

강신(降神) : 신내리기
제사드릴 신을 제상으로 강림시키는 절차이다.
제주가 신위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끓고 앉아 향로에 향을 피운다. 집사가 제상에서 잔을 들어 제주에게 건네 주고 잔에 술을 조금 따른다. 제주는 두 손으로 잔을 들고 향불 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모사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는다. 빈 잔을 집사에게 다시 건네 주고 일어나서 두 번 절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고, 모사에 술을 따르는 것은 땅 아래 계신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예서에 따라서는 이 강신의 절차를 이후에 행하는 참신과 순서를 바꾸어 기록한 것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집안도 많다. 그러나 일단 신이 강림해야 참배할 수 있기 때문에 강신을 먼저 하는 것이 옳다.[가례]등의 예서에서 참신을 먼저 하게 한 것은 당시의 제사가 신주를 모시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주에는 항상 신이 깃들어 있으므로 먼저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참신(參神) : 합동참배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합동으로 신에게 참배하는 절차로 첫 문안인사와 같은 것이다. 모든 참사자들이 일제히 두 번씩 절한다.
과거에는 남자는 절의 횟수가 재배(2배),여자는 4배로 하였는데 이는 음양의 이치에 따라 양의 수는 1,음의 수는 2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산사람에게는 양의 도를 따르기 때문에 한 번씩만 절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음의 도를 따르기 때문에 두 번씩 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음의 도에 속하기 때문에 두 번씩 두 번 절하는 것이라 한다.

초헌(初獻) : 첫잔드리기
제주가 첫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이 절차는 제사의 핵심이며 가장 중요한 의식중에 하나이다. 제주는 고위의 신위부터 차례로 첫잔 드리기를 행한다. 먼저 고위의 잔반을 받을어 동향하고 서면 집사가 서향하여 잔에 술을 따라 올린다. 비위의 잔반에도 같은 방법으로 반복을 한다. 과거에는 초헌 때 육적을 즉석에서 화로에 굽고 소금을 발라 젯상에 올렸다.

독축(讀祝) : 축문 낭독
초헌이 끝나고 참사자가 모두 꿇어 앉으면 축관이 옆에 앉아서 축문을 읽는다. 축문은 제주가 읽어도 되는데, 엄숙한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야 한다. 축문을 읽는 동안 참사자들은 모두 엎드려 고인을 추모한다.
축문 읽기가 끝나면 모두 일어나 두 번 절한다. 과거에는 독축 뒤에 곡을 했다. 곡은 직계 자손들만 하는데, 이 날이 조상의 기일이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기제사는 반드시 곡을 해야 했고 조부 이상의 조상 제사에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헌(亞獻) : 버금잔 드리기
신위에 두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초헌때와 같으나 주부가 잔을 올리고 절할 때는 4배를 한다. 아헌때 육적 대신 어적을 즉석에서 구워 올렸다.
아헌은 [가례]류의 예서에서 모두 주부가 행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제사는 부부가 함께 한다(夫婦共祭)"는 정신에서 나온 예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전통적로 여자가 가 헌작하는 풍습이 드물었으로 아헌은 주로 형제들이 행하였다.

종헌(終獻) : 끝잔 드리기
세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삼헌이라고도 하며 제향에서 마지막으로 올리는 잔이다. 아헌자의 다음 가는 근친자가 아헌 때와 같이 한다. 잔은 7부쯤 부어서 올린다.

첨작(添酌)
종헌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제주가 다시 신위 앞으로 나아가 끓어 앉으면 집사는 술주전자를 들어 종헌 때 7부쯤 따라 올렸던 술잔에 세 번 첨작하여 술잔을 가득 채운다.

삽시정저(揷匙正箸)
첨작이 끝나면 주부가 메 그릇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메 그릇의 중앙에 꽂는다. 젓가락을 고른 뒤 어적이나 육적 위에 가지런히 옮겨 놓는다. 숟가락은 바닥(안쪽)이 동쪽으로 가게 한다. 삽시정저가 긑나면 제주는 두 번, 주부는 네 번 절한다.

합문(閤門)
이는 귀신이 안심하고 식사를 할 수 있게 사람들이 잠시 피하는 의식이다. 참사자가 모두 잠시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기다린다. 대청마루에 제사를 차렸으면 뜰 아래로 내려가 읍한 자세로 잠시 기다린다. 단칸방의 경우에는 제자리에 엎드려 몇 분 동안 있다가 일어선다. 참사자 이하 남자들은 문의 동편에 서서 서쪽으로 향하고, 주부 이하 여자들은 문의 서편에 서서 동으로 향하는데 이는 음식을 드시는 조상을 정면으로 향하기가 미안해서이다.

계문(啓門)
닫았던 문을 여는 절차이다. 축관이 헛기침을 세 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참사자가 모두 뒤따라 들어간다.

헌다(獻茶) : 숭늉올리기
갱을 내리고 숭늉을 올린 뒤 메 세 술을 떠서 물에 말아 놓고 저를 고른다. 숟가락은 손잡이가 서쪽으로 가게 걸쳐 놓는다. 이때 참사자는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잠시 동안 조용히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든다.

철시복반(撤匙覆飯)
숭늉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두어 제자리에 놓고 메 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사신(辭神) : 신에 대한 작별인사
고인의 영혼을 전송하는 절차로서 참사자가 신위 앞에 일제히 두 번 절한 뒤, 지방과 축문을 불사른다. 지방은 축관이 모셔 내온다. 신주일 때는 사당으로 모신다. 이로써 제사를 올리는 의식 절차는 모두 끝난다.

철상(撤床) : 제상 정리
제상 위의 모든 제수를 집사가 뒤쪽에서부터 차례로 물린다. 제사에 사용한 잔,주전자,퇴주그릇 등에 있는 술은 모두 병에다 부어 보관하는데, 이것을 복주(福酒)라고 한다. 과일,채소,나물,고기,기타 음식들은 모두 일반 그릇에 옮겨 담고 제기는 잘 세척하여 보관한다.

음복(飮福) : 복받기
참사자가 한자리에 앉아 제수를 나누어 먹는데 이를 음복이라 한다. 음복을 끝내기 전에는 제복을 벗거나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
고례에는 준이라 하여 참사자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들에게 제사 음식을 나
누어 주고 이웃 어른들을 모셔다가 대접하기도 했다.